# 5
단팥 제조의 시작은 청년이 미리 불려둔 팥을 끓이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삶아진 팥은 찬물에 충분히 헹궈야 했습니다. 제대로 헹구지 않으면 팥의 떫은맛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죠.
팥을 꼼꼼히 헹궜다면, 이제 다시 냄비에 넣고 푹- 삶을 차례인데요. 꽤 오래 고와야 하기에 이제부터 할 일은 숙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었죠.
어느새 김의 냄새가 달라지면 드디어 다 삶아진 겁니다. 그러나 바로 물에 헹구는 게 아니라 좀 더 뜸을 들여야만 합니다. 벌써부터 단팥을 만드는 일이란 아주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담뿍 담아야 하는 작업이리란 짐작이 되죠. 아무리 힘쓰는 일을 청년이 대신 한다지만, 이 긴 과정 안에서 할머님은 연신 웃음을 잃지 않으세요. 단 한 번의 지루한 내색 없이 최대한의 정성을 들이실 뿐입니다.
“(팥을) 극진히 모셔해 해. 밭에서 여기까지 힘들게 와줬으니까.”
***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즐겁기만 합니다. 결코 대충하거나 서두르시는 법이 없고, 정말 푹 빠져 계셨어요.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근심을 잊으신 것처럼. 그 모습을 보며 ‘저 기분이 순간에 온 정성을 쏟을 때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감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뜸 들인 팥을 찬물에 헹굴 차례인데요. 말랑해진 팥이 으깨지면 안 되기에 물줄기는 아주 약하게 틉니다. 연필 한 자루 정도의 굵기 정도로 아주 약하게요. 역시나 팥이 모두 헹궈질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삶는 과정에서 색이 탁해진 팥물이 모두 걸러져 투명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거든요. 단판을 만드는 일이란 모든 과정이 ‘기다림’이었습니다.
마침내 삶아진 팥을 당과 함께 버무릴 차례! 버무려진 팥을 마지막으로 삶기만 하면 단팥이 모두 완성됩니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냉큼 삶으란 지시 없이 다시 자릴 잡고 앉으십니다. 그런 채 쭉- 오래 앉아계실 요량으로요. 청년은 기가 막혀서 묻습니다.
“(설마) 또 기다려요?”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잖아. 당과 친해질 동안 기다려줘야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죠?”
“두 시간.”
“두 시간이요? (충격)”
할머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시곤 쪽잠을 청합니다.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로요. 그 표정은 분명, 팥을 쑤는데 온 기운을 쏟아냄에 대한 흡족함이었습니다.
반면 사장의 두 눈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표정이었죠. 그러나 완성된 단팥의 맛을 봄과 동시에 그의 눈은 휘둥그레집니다. 그 눈은 분명,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구나.’란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이야기하죠.
"이런 단팥은 처음입니다."
며칠 뒤, 청년의 도리야키 집은 성수동의 작은 빵집처럼 전에 없던 문전성시를 이루게 됩니다. |